대서양한미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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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역사

대서양 한미노회가 탄생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세월이 걸렸다. 탄생 되기 약 5 년 전부터 미국장로교 중대서양대회 지역 내에 있는 30 여개의 교회가 해마다 여름 선교대회를 열었고 그 선교 대회가 열릴 때마다 한미노회 구성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우수명 목사가 회장으로 시무할 때에 드디어 한미노회 구성을 위한 준비 위원들이 선출 되었고 미국장로교 중대서양 대회에 노회 구성을 정식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노회 구성을 위한 헌의안이 중대서양 대회에서 통과되는 과정 가운데 당시 대회 총무였던 캐롤 젱킨스 목사의 협력과 협조해 준 흑인교회 리더들의 지지도 잊을 수 없다. 대회소속 마사네타 수양관에서 모인 제 200 차 대회는 한미노회 구성을 위한 task force 를 임명하였다. 그 task force 로 직전 대회장이었던 Jim Mosher 장로, 한국 선교사 출신의 John Folta 목사, 배현찬 목사(당시,리치몬드한인장로교회), 허중호 목사 (당시, 메릴릴랜드제일장로교회), 이순각 목사 (당시 시온장로교회), 조남홍 목사 (당시 갈릴리장로교회) 및 목사균 장로(리치몬드한인장로교회, 버지니아 컴먼월스 대학교수)가 임명이 되어서 한미노회가 왜 필요한가부터 연구 토론을 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한미노회 가입을 원하는 교회들이 장로교 헌법에 준하여 15 개 이상이 되어야했다.  준비 위원회는 교단 안팎에서 15 교회를 창립회원으로 받아드리는 작업을 시작하여, 각각의 한인교회에 서신을 내고 원하는 교회는 공동회의를 거쳐 가입청원서를 위원회에 제출하게 하였다.  이중에는 개척교회 수준의 당회가 없는 교회가 절반이나 되었으나,  그 당시 미국장로교헌법에는 15개 교회가 모두 조직교회이어야 한다는 조항이 없었기에, 총회의  유권해석을 받고 일을 진행하였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1997 년 9 월 10 일 드디어 첫 한미노회 회의로 회집하였다. 노회장과 서기만을 뽑고 1 년동안 각 위원회를 구성하고 노회 내규를 만들고 총무 청빙절차를 밟아갔다.  또한 중대서양 대회에 그랜트를 신청하여  향후 5 년 동안 년 5-6 만불의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노회는 총무를 청빙하여 제 3 차 정기 노회시에 권영배 목사의 취임 예배를 드리었다. 이때까지는 목사균 장로가 임시로 총무겸 서기의 일을 대행하였다. 권영배 목사의 총무 사임 이후, 노회는 조남홍 목사를 임시총무로 사역케하였다. 그 후 조남홍 목사를 정식 총무로 선출하였다. 조남홍 목사 은퇴 후 강기석 목사를 노회 총무로 선출하였다.
노회 창립 당시의 15개 교회는 다음과 같다: 미국장로교 소속 교회: 1. 갈릴리한인장로교회 (조남홍 목사); 2. 북버지니아 한인장로교회 (황수봉 목사); 3. 시온장로교회 (이순각 목사) ; 4. 훼잇빌 한인장로교회 (김성웅 목사) ; 5. 리치몬드 중앙장로교회(고태형 목사) 6. 리치몬드 한인장로교회 (배현찬 목사); 7. 뉴폿뉴스 한인장로교회(신희성 목사); 8. 솔즈베리한인 장로교회 (김동영 목사)
타교단에서 이명: 9. 민족장로교회 (정창은 목사); 10. 성산교회 (윤의환 목사) ; 11. 샘물장로교회 (배현수 목사); 12. 평강장로교회 (서보창 목사); 13. 성실교회 (문승천 목사); 14. 성산장로교회(최수일 목사); 15. 케이톤스빌장로교회(김효빈 목사)